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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필더 이후권 선수의 별명은 ‘후케’이다. 마케렐레와 이후권을 줄였다. 마케렐레의 경기 장악능력과 팀에 헌신하는 모습이 닮아서 같이 경기를 뛴 선수들이 붙여 준 이름이다. 지난 몇 년 동안 K리그1과 K리그2를 넘나들며 미드필드에서 존재감을 뽐낸 이후권.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동계 훈련을 보내고 있지만 가장 재미난 분위기에서 훈련을 즐기고 있다는 이후권을 전지 훈련지인 제주도 서귀포에서 만나봤다.
학창시절
이후권의 아버지는 축구지도자 출신이다. 고향은 포항이지만 울진중학교 감독을 은퇴하고 강릉으로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 손을 잡고 조기 축구회를 따라다니다가 자연스레 축구와 친해졌다. 이후권은 “어릴 때는 공을 차고 노는 자체가 좋았다. 축구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냥 멋있어 보였다”고 했다. 이어 “초등학교 3학년때 본격적으로 축구를 하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했다. 축구부가 있는 초등 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말했다.
축구선수로써 시작이 쉽지는 않았다. 축구를 지도자의 시각에서 보는 아버지는 이후권에게 엄격했다. 이후권은 “아버지는 항상 냉정하고 객관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다. 축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초등학교 6학년 때도 내가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포기하라고 하셨다. 뛰는 모습을 보면 부끄러워서 볼 수가 없어서 축구 선수의 꿈을 접으라고도 하셨다. 그 이후부터 새벽 운동을 하는게 습관이 됐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는 재미있는 시절이었다. 처음으로 가족의 품을 떠나 협성고등학교와 대성고등학교를 다녔다. 이후권은 “축구 자체가 재미있었던 이유도 있지만. 집이랑 멀어서 재미가 있었다.(웃음) 아버지와 가까이 있을 때는 축구부에서 숙소 생활을 해도 따로 불러서 운동을 많이 시켰다. 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워낙 혹독하고 엄격하셨다”고 말했다. 이어”선배들이 후배들에게 기합 같은 것도 없었고, 1학년 때부터 경기를 뛰기도 했다. 2007년에는 청룡기 고등학교 축구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우승의 달콤함도 맛봤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광운대학교 시절에는 좌절과 상처가 공존했다. 동기가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뛸 때 뛰지 못하고, 능력 있는 4학년 선배들을 보면서 힘들었다고 했다. 이후권은 “같이 들어온 친구들이 경기를 뛸 때 나는 카메라를 들고 친구들이 뛰는 모습을 비디오를 찍었을 때 가장 좌절감을 느꼈다. 무조건 살아 남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경기를 뛰고 싶어서 새벽 훈련과 저녁 개인 훈련에 더욱 몰두했다. 2학년때는 좌절과 상처가 조금 낫긴 했지만 여전히 선배들과의 실력차이에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 지금 같이 있는 정호정 선배도 김남춘(현 FC서울)도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인 이석현(포항스틸러스)이가 도움도 주고 서로 의지하면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고 말했다.
프로 생활
이후권은 광운대학교를 졸업하고 1995년 부천FC에 우선지명으로 입단했다. 그리고 상주상무프로축구단 부천FC와 성남FC를 거쳐 지난해에는 포항스틸러스에서 활약했다. K리그1과 K리그2를 두루 경험하며 미드필더로써 존재감을 뽐내게 된다.
우선 지명된 순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후권은 “강원FC에서 테스트를 겸해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그 날이 강릉시청이랑 연습 경기를 하고 있었다. 전반전이 끝나고 김학범 감독님께서 부르셔서 (공)민현이랑은 이제 여기서 나가라고 했다. 알고 보니 우선 지명으로 부천에 같이 입단하게 됐다. 같이 테스트를 보던 다른 선수들은 부러운 눈길이었고, 평소에 엄격하신 아버지도 축하한다고 이야기를 하셔서 너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프로 선수가 된 것을 처음으로 깨달은 건 신인 선수 교육 받을 때다. 이후권은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데뷔한 느낌이 신기했다. 연맹에서 주최하는 신인선수 교육을 갔는데 프로 축구 선수 이후권이란 표찰이랑 보고 그때서야 내가 프로가 됐구나 실감했다”고 말했다. 이어”감격스러웠다. 프로가 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나보다 열심히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프로데뷔 첫 해인 2013년 이후권은 31경기에 출장해 3득점 3도움을 기록하며 활약했다. 성공적인 데뷔였다. 이후권은 “20명이 신인이었다. 대학 선발 느낌이었다. 선, 후배간 경쟁이 아니라 동료간에 경쟁이었다. 개인 훈련도 꾸준히 계속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웨이트도 하고 개인훈련에 매진했다. 휴가차 집에 가도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있는 것이 싫었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성과도 인정 받았다”고 말했다.
슬럼프
상주상무를 제대하고 부천으로 복귀한 첫 해 슬럼프가 찾아왔다. 축구를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이후권은 “노력은 엄청 했는데 모든 것이 잘 안 풀렸다. 같은 팀 동료인 친구랑 이제 프로축구 선수가 아니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엄청 진지하게 생각할 정도였다. 그 때 느낀 것이 발버둥 쳐도 안 되는 것이 있구나 하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테스트를 받으러 오는 선수들이랑 경기 하면서도 더 죽기 살기로 했다. 단체로 휴식시간이 있어도 피지컬 코치한테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더 열심히 할 테니 훈련을 시켜 달라고 할 정도였다”고 밝혔다.
힘든 슬럼프를 보내고 어려움을 겪던 해 성남FC 김학범 감독이 손을 내밀었다. 강원FC 테스트 시절부터 김학범 감독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이후권은 “부천과 상주에서의 활동을 많이 지켜봤다고 하셨다. K리그1에서는 확실히 K리그2 보다 스피드나 압박의 강도가 높았다. 실수 하나가 엄청난 차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피지컬을 키우고 파워 훈련을 꾸준히 하며 K리그1에서 살아남기 위해 훈련했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이후권은 능력을 인정받았고, 2016년과 2017년 성남FC에서 총 39경기를 뛰었다.
이후권은 성남FC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2018년 포항스틸러스로 이적했다. 미드필더로 포지션은 같았으나 감독님이 원하는 세부적인 역할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후권은 “홀딩 역할이지만 상대방을 차단하는 역할이 먼저였고, 내 장점인 넓은 활동 반경을 커버하는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그 자리에 채프먼(현 포항스틸러스)이 더 적합했다. 자부심을 가지고 포항으로 이적했는데 마음만으로 스타일을 쉽게 바꾼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내가 제일 잘 하는 일을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역할 변경이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부산아이파크
이후권은 지난 1월 부산에 합류했다. 공격적인 경기 스타일이 조덕제 감독의 철학과 맞물려 이적이 성사됐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투쟁적인 모습으로 미드필더와 측면에서도 활동이 가능한 유틸리티 자원인 점이 큰 점수를 얻었다. 이후권은 “포항에서 20경기를 뛰긴 했으나 좀 더 많이 경기를 뛸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이적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박)종우형이 이적했다”고 웃었다. 이어 “축구는 11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팀에 헌신하며 필요한 역할을 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우리목표는 승격이다. 경기에 뛰지 않는 선수들도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권은 부산에서 데뷔하던 첫 해처럼 보내고 싶다고 한다. 이후권은 “선수단 분위기가 아주 좋다. 형들부터 운동장에서 권유보다는 먼저 말을 하고 행동하는 스타일이다. 형들부터 분위기를 잘 잡아줘서 좋다. 웨이트도 제일 힘든 시간인데 반대로 제일 재미 있는 시간이다. 운동할 때는 다 같이 응원하고 도와주려는 분위기라서 힘들지 않고 재미있다”고 말했다. 이어 “나이도 이제 서른이다. 지금이 1년차라고 생각한다. 다시 축구로써 리셋한다는 생각을 갖고 생활을 할 것이다. 종우형이 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내게 맡은 임무와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해 팀에 헌신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후권은 부산아이파크에서 각오도 드러냈다. “K리그1과 K리그2 팀에서 다양하게 활약했는데 어디를 가서든 축구 경기를 뛸 수 있는 몸 상태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아직까지 프로생활 점수는 40점이라고 생각한다. 뭐든지 끝나봐야 좀 더 정확한 점수를 매길 수 있다. 노력을 해도 결과가 좋지 않았던 때가 많았다. 나의 스타일로 제일 잘하는 것을 하면서 인정을 받고 싶다. 경기에서 스타가 되기 보다는 자기 역할을 다하는 조연이 되고 싶다. 여태껏 해왔던 내 역할과도 맞다고 생각한다. 팬들이 가장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헌신하고 선배와 후배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