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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부천에게 늘 그렇듯 어이없는 축구로 대패했습니다. 현장에서 본 부산 축구는 철학이 뭔지 알 수 없을만큼 엉망이었죠. 순위는 어느새 최하위로 떨어졌고, 2부에서도 이 시점에 꼴찌로 있었던건 처음 겪어보는 일입니다. 12라운드동안 승점 6점, 심지어 11위 안산은 승리가 없음에도 실점이 워낙 많아 득실차로 밀리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죠.
그러다 선수단이 버스에 탑승하기 직전, 올라온 기사를 봤습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페레즈 감독님이 "난 겁쟁이가 아니다. 도망치지 않는다"며 기자들에게 호언장담하는 내용이었죠. 자신의 사임은 절대 없을 예정이며 오늘 경기 결과 원인을 선수들의 멘탈탓으로 돌리는 내용도 보였습니다. 전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현 상황에 대해 공개적으로 질의할 필요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전 어느정도는 영어를 할 수 있기에, 필요하다면 구단 통역 불러서라도 대화를 하려 했습니다.
머릿속으로 미리 몇가지의 질문을 구상했고 멀리 감독님의 모습이 보이자 다가서서 대화를 요청하려 했습니다. 평소에 그토록 팬들과 존중을 강조해온 감독이니만큼 적어도 영어로 대화를 요청하면 피하진 않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오해가 있었다면 대화로 풀면 될 일이고, 장거리 원정을 온 선수들이 피곤한걸 알기에 그리 긴 시간을 보낼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 이전에 저도 사람이고 피곤하니까요.
그런데 정작 제가 영어로 페레즈 감독을 여러차례 불렀음에도 그는 버스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두세번을 불렀음에도, 계속해서 무시하기에 버스 출입문 앞에 서서 "페레즈 감독, 이야기 좀 하자!"고 말했습니다. 그제서야 쳐다보는 시늉이라도 하더군요. 그리고 전 "우린 지금 꼴찌 상태다. 이런 적은 구단 사상 처음이다"라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단 한마디의 답변도, 다시 돌아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전부 영어로 했습니다.
제가 재차 내려와서 이야기 잠시만 하자고 하려고 하는 순간, 근처에 있던 경호원이 "뭣 때문에 그러시냐"고 막아서자, 전 "이야기 좀 하려는 거 뿐이다. 이야기는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말을 했고, 이런 식으로 옥신각신하는 불과 수 초 사이에 구단 버스는 출발해버렸습니다. 어이없어하는 절 내버려두고 말이죠.
떠나는 버스를 향해 전 외쳤습니다. "You're a coward!"
팬과의 대화를 피하고 도망가는건 말 그대로 비겁한 행동이니까요.
과연 그는 제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었을까요? 그렇진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제 바로 앞에서 샌드위치를 건내주는 팬에게는 고맙다고 하면서 받아들었거든요.
이 감독은 자신에게 샌드위치를 주는 팬은 팬으로 인정하지만, 성적 부진에 대해 토로하는 사람은 팬으로 보이질 않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은 겁쟁이가 아니지만, 팬과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잠깐의 시간을 들이는거조차 회피하는건 당연하다고 믿는거죠. 그게 페레즈의 본 모습인겁니다. 기사와 다른 그의 민낯이죠.
이게 감독 이전에 사람입니까? 국적과 종목을 떠나 한 사람의 프로로서. 부끄럽지도 않나요. 이런 사람을 계속해서 감독으로 앉혀두는게 부산 아이파크의 철학이고 비전입니까? 이게 팬들에게 "respect"를 외치던 사람의 면모인가요? 그리고 그걸 선수들에게 가르칠 자격이 있는 인간입니까?
기자들 앞에서의 모습과 팬 앞에서의 행동이 다르다면, 누가 이 사람을 신뢰할 수 있고, 누가 이 사람이 떠드는 내용에 대해 관심을 갖겠습니까.
제가 부산 축구를 본 지도 어느새 17년이 되어갑니다. 지금 주장님이 입단하기 전부터 축구를 봐왔어요. 비록 제가 부산 축구를 가장 잘 안다고 감히 자부하진 못해도 적어도 최소한도로 평가 할 수 있는 눈을 기를 수 있는 시간은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보았던 수많은 감독들이 있었으나, 이런 감독은 처음입니다. 하다못해 최영준 감독조차 저한테 항변을 했을지언정 적어도 대화 자체를 거부하진 않았습니다. 윤성효보다도 더 최악이에요. 그동안 이런 거지같은 감독들만 선임해온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겠습니다. 그럼에도, 이 팀은 나아질 모습을 보이지 않네요. 사람들 바뀌어도 그대로입니다.
뭐가 문제일까요? 사실 더 이상은 생각하기도 귀찮네요. 이런 대접 받아가며 팬질해야 하는지. 정말 진심으로 저 자신에 대한 회의감과 환멸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왜 난 내 소중한 휴가를 써가며, 내 돈을 내서 스트레스를 받으러 와야 하는가. 그리고 대놓고 면전에서 무시당해야만 하는가 말이죠. 부산 축구가 대체 나에게 있어서 뭔가를 근본적으로 되묻지 않을 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부산팬으로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부산을 응원한다고 말해온 지난 세월들이 참.... 뭐랄까. 허탈하네요. 괴짜 취급을 받았어도 그러려니 했고. 저에게 부산은 청춘 그 자체를 보내온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서포터들과 뜻은 다르지만 보편적인 기준에서 부산팬이라고 불릴 만한 충분한 세월과 자격을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끝에 다다른 길은 모멸감 가득한 현실이네요.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주변에 축구팀이 있으니 한번 가보자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저를 막아서며 말하고 싶습니다. 이 팀은 니가 젊음과 세월, 그리고 열정을 바칠 자격이 없는 팀이니 지금이라도 관심 끊고 남들처럼 야구나 다른 취미 바라보며 살라구요. 그게 훨씬 더 유익할거라고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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